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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y 기도/Mission for Pray 기도사역

존 칼빈과 제네바를 위한 기도

by hispeople 2022.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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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칼빈의 삶과 업적에 대하여

16세기 종교개혁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개신교 신학자 존 칼빈(John Kalvin)은 1509년 7월 10일에 프랑스의 노용에서 태어났다. 칼빈의 아버지도 칼빈이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변호사가 되기를 바랐다. 칼빈은 친척이었던 주교의 집안에서 귀공자들과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그들과 함께 파리로 가서 우수한 대학에서 인문과학을 공부했다. 그는 성경이 엄격하고 책임감이 강했다. 그리고 두뇌가 명석하고 민첩하여 정확한 이론과 논리적 분석에 능란하였다. 1533년 칼빈은 자신의 표현대로 '갑작스러운 회심'을 하게 된다. 그는 그때의 경험을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을 사로잡으셔서 순종으로 인도하셨다"라고 했다.

 

 

루터와 츠빙글리의 글들을 많이 읽었던 그는 가톨릭 교회와 결별하고, 원서를 연구하는 학자의 삶도 포기하고, 프랑스에서 개신교 신앙을 전파하며 살기로 결심한다. 종교개혁 당시까지 사람들의 생각은 단 하나의 보편교회만 있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이 교회 밖의 다른 교회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교회에서 나뉜다는 것은 이단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복음 그대로의 가르침을 추구하던 종교개혁자들은 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해 쫓겨났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개신교도들에 대해 상당히 관용적인 편이었는데 1535년 갑자기 핍박이 시작되다. 칼빈은 파리를 떠나 프로테스탄트 중심지인 스위스의 바젤로 피난을 가게 되었고, 이때 집중적으로 성경에 몰두하며 신학을 연구하였다.

 

 

1536년, 27세의 나이로 그의 걸작품 『기독교강요(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를 라틴어로 출판하였다. 칼빈은 이 책에 대해 “누구든지 종교적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들이 진정한 영성을 갖기 위하여 필요한 기본적인 지침들이다”라고 했다. 겨우 6장으로 된 초판은 계속 개정, 증보해서 1564년에는 80장이 되었다. 이 책은 가장 명쾌하고 논리적이며 읽기 쉬운 개신교 신학 서로서 종교개혁 시대가 낳은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위필드 박사는 "칼빈이 인류에게 끼친 모든 공헌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그의 천재적인 능력에 의하여 저작된 이 '기독교강요'라는 종교 사상 체계의 선물이었다."라고 말했다.

기독교강요의 중심사상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 즉, 예정론이다. 이것은 ‘원죄로 말미암아 자유의지를 상실한 인간은 선을 행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긍휼을 드러내시기 위해 택하신 어떤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을 받도록 섭리하였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그 사람이 구원받을 것인지 아닌지를 알고 계신다는 것이다. '기독교강요' 초판이 출판되고 나서 졸지에 유럽 전역에서 유명인사가 된 칼빈은 학자의 삶으로 돌아가려고 조용한 전원마을 스트라스부르로 가고 있었다. 가는 도중 하룻밤 묵기 위해 들른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그의 인생행로는 완전히 바뀌게 된다. 당시 제네바는 너무 어지럽고 힘든 상황으로 조용히 학문연구에 전념하려는 칼빈에게는 적합하지 않았다.

 

당시 제네바는 개신교 혁명이 일어나 불같은 성격의 개혁자 윌리엄 파렐(William Farel, 1489∼1565)의 4년간의 활동으로 카톨릭계 군중들은 거의 제압된 상태였다. 제네바의 개신교 혁명은 가톨릭 주교를 향한 정치적 반감이 주를 이룬 것으로 체계적인 이론에 기초한 것이 아니어서 뿌리가 약했다. 누구도 성경적 논리에 기초해서 체계적으로 도시의 시스템을 개혁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파렐과 그의 추종자들이 도시를 장악하고 있긴 했지만 실재 개혁을 주도할 지도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칼빈이 제네바에 온다는 소식을 들은 파렐(Farel)은 본능적으로 그가 제네바에 종교 개혁을 완성할 인물이라고 느끼고 칼빈을 찾아가 제네바에 머물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칼빈은 그의 청을 거절했다. 이에 파렐은 칼빈에게 "만약 그가 그의 재능을 몹시 필요로 하는 곳에서 사용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재앙을 받을 것"이라고 협박하며 설득했다. 결국 칼빈은 제네바에 남기로 하고, 공적인 성경 강해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제네바 시의회는 칼빈에게 거룩한 성경말씀을 가르치는 교수라는 직위를 내렸고, 칼빈은 열정적으로 이 일에 착수했다. 그는 제네바 시민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엄수해야 할 신앙고백을 만들었고, 모든 시민들이 받아야 할 종교교육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그리고 영적, 도덕적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은 출교 하거나 성만찬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강조했다. 칼빈의 종교개혁 청사진은 개신교 내에서도 가장 엄격한 도덕기준을 가진 것으로서 제네바 시의 지도자들도 미처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로마 교황청과의 결별은 원하면서도 칼빈이 주장한 엄격한 도덕적 삶의 기준은 감당하기 싫은 시 지도자들은 칼빈의 개혁 청사진이 근거 없는 율법주의라고 반대했다.

 

 

결국 1538년 4월, 제네바 시의회는 칼빈을 추방했다. 칼빈은 자신이 처음 계획했던 대로 스트라스부르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핍박을 피해 신앙을 지키기 위해 프랑스를 떠나온 개신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3년 동안 행복하게 목회활동을 했다. 3년 후 칼빈을 지지하는 친구들이 제네바 시의회를 장악했고, 이들의 요청으로 칼빈은 1541년 제네바로 돌아오게 된다. 동맹관계였던 베른과 제네바가 영토문제로 날카로워진 상태였던 데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톨레토 추기경이 제네바시 의회 앞으로 로마 가톨릭 신앙으로 돌아오라는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칼빈은 흔쾌히 사톨레토 추기경에게 보내는 답신을 써준다. 자신을 위협하고 괴롭히고 결국 쫓아낸 도시였지만 개신교 신앙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도움을 준 것이다. 제네바로 돌아온 칼빈은 개혁교회를 세우고, 교회 법규를 세웠다. 이것이 약간의 수정을 거쳐 오늘날 제네바 교회의 헌법 역할을 하고 있다. 칼빈은 교리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려고 제네바에서 멀지 않은 로잔에 아카데미를 창립하였다. 장차 칼빈주의파 목사가 될 사람을 양성하기 위해서 대학교 수준의 신학적 교육을 시작하였고, 총장을 데오드로 베자에게 맡겼다. 후에 베자는 칼빈의 후계자로 개혁파 프로테스탄트 주의의 중심 지도자가 되었고 아카데미는 현재 제네바 대학교로 발전했다.

 

 

칼빈은 12명의 평신도 장로들과 목사들의 당회(Consistory)를 구성했고, 당회는 교회뿐 아니라 도시 전체의 도덕적 감독 역할을 했다. 당회가 처벌했던 죄로는 공적 예배 불참, 음주, 간음, 도박과 춤추는 것도 포함되었다. 시 정부는 교회가 시민들의 생활을 너무 지나치게 억압하려 한다는 이유로 반발했고, 이러한 대립관계는 12년 동안 계속되었지만 그는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다행히 핍박을 피해 프랑스로부터 계속 몰려드는 개신교 피난민들이 칼빈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제네바는 칼빈의 노력으로 박해받는 자들의 피난처가 되고 개혁주의 신앙의 훈련소가 되었다.

 

 

전 유럽으로부터 모여드는 피난민은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의 원리를 명확하게 배워가지고 돌아가곤 하였다. 칼빈은 전 생애 동안 하나님의 교리를 개혁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확신하며 살았다. 그 무렵 유명한 미카엘 세르베투스(Michael Servetus, 1511∼1553) 사건이 터졌다. 1533년 마키엘 세르베투스라는 스페인 의사이자 신학자가 제네바로 망명을 왔다. 그는 니케아 공회의 삼위일체 교회를 부정하다 가톨릭 교회로부터 ‘이단으로 죽여도 좋다’는 선고를 받고 핍박을 피해 도망하던 중이었다.

 

세르베투스는 콘스탄틴 대제의 회심에서 비롯된, 교회와 국가를 하나로 만든 정교유착은 교회의 치명적 실수였다고 주장하며 삼위일체 교리도 반대했다. 그의 주장은 당시 제네바를 개신교 교회 국가로 만들려고 노력했던 존 칼빈을 격분하게 했다. 칼빈은 38개의 혐의를 들어 그를 기소했다. 한편 칼빈의 적들은 세베르투스 사건을 이용해 칼빈을 견제하려 했다. 이에 제네바 시의회는 스위스의 많은 개신교 자치주들의 자문을 구한 결과 세베르투스가 가톨릭뿐 아니라 개신교 기준으로도 이단임에 동의했다. 시의회는 그를 화형 시켰다.

 

 

그러나 이것은 칼빈의 뜻은 아니었다. 칼빈과 츠빙글리는 많은 면에서 서로 닮았다. 그래서 츠빙글리와 칼빈의 후계자들을 합쳐서 '개혁주의 전통'(The Reformed Tradition)이라 부른다. 여기에는 모든 장로교와 네덜란드 및 독일 개혁교회들, 많은 침례교회와 회중교회들을 포함한다. 반면 루터의 추종자들은 따로 '루터교'(Lutheranism)이라 불리게 된다. 칼빈 신학의 출발점은 모든 크리스천이 그 권위를 존중하는 사도신경이다. 칼빈은 사도신경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과 교회에 관한 4가지 핵심이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나는 성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과 거룩한 공회를 믿는다"는 고백이다. 이것은 '기독교강요'전체 구성 뼈대가 되기도 했다. 루터 신학의 핵심은 이신칭의로 핵심 성경 구절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이다. 반면 칼빈 신학의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Sovereignty of God)이고, 주제 구절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이다. 루터의 신학이 용서의 기적에 그친데 반해 칼빈 신학은 용서받은 것을 포함해 모든 방면에서 하나님의 뜻이 절대적으로 이뤄진다는 확신이었다.

 

따라서 칼빈은 아담과 하와의 죄까지도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칼빈의 유명한 예정론(Predestination)을 탄생케 했다. 어떤 이들은 구원받기 위해 선택되었지만 어떤 이들은 멸망받기 위해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에베소서 1:4-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하는 십자가의 은혜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받기로 선택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칼빈은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예정한 사람들을 택자(擇者, The elect)라고 불렀다.

 

 

택자란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은 이들이다. 칼빈의 예정론은 단순히 천국 가는 티켓이 아닌,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셔서 교회뿐 아니라 사회 전반, 세상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영광을 흘려보내는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한 계획이라고 가르쳤다. 칼빈은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가 있음을 강조했다. 보이는 교회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조직적인 교회로 이 교회에는 택함을 받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함께 섞여 있다.

 

반면 보이지 않는 교회는 택함을 받은 자들로만 구성된 진짜 교회라 할 수 있다. 칼빈은 두 개의 성례(세례와 성만찬) 참여, 도덕적 생활, 공적인 신앙고백을 누가 구원받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세 가지 기준으로 제시했다. 칼빈은 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다면 당연히 교회를 어머니로 여겨야 한다."라고 했다. 그는 또한 목회자들은 성경말씀 중심의 강해설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첫째, 기록된 당시 상황과 저자의 의도를 잘 파악하여 문맥에 따라 해석하고, 둘째,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며, 셋째,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성경을 해석하라고 했다. 칼빈 신학의 주제는 성경과 성령이었다. 칼빈은 성령에 관해 굉장히 강조했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은혜가 택자들 안에 계시는 성령의 신비로운 역사로 인해서 열매를 맺는다고 했다. 성령의 주된 임무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생산하는 것이다. 칼빈은 고린도전서 12장 3절 말씀처럼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만 예수를 주라 고백할 수 있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는 한 사람이 구원받는 데 절대적이라는 것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고전 12:3). 그러나 안타깝게도 칼빈으로부터 프린스톤의 벤자민 워필드(Benjamin Warfield)까지 복음주의 개혁신학은 방언, 방언 통역, 신유, 기적 행함과 같은 은사들은 사도시대와 함께 중지되었다고 가르쳐왔다.

 

그러나 조지 말론(George Mallone), 존 오미어(John Opmeer), 제프 커비(Jeff Kirby), 폴 스티븐(Paul Stevens)등은 자신들의 신학적 배경이 개혁주의이며 세대주의여서 성령의 은사들은 사도시대와 함께 중지되었다고 믿도록 배웠고,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그런 신학노선에 충실했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첫째, 특별한 은사가 중지되었다는 가르침은 성경에 없으며, 둘째, 교회는 은사들의 결핍으로 지극히 약해졌고, 빈혈증에 걸려있다. 셋째, 우리의 경험을 통해 볼 때 은사들은 오늘날 교회를 위해서도 유용하다.(피터 와그너,『제3의 바람』, 35-37.)

 

 

칼빈은 예배 개혁을 위해 가톨릭의 모든 형상들과 오르간 음악 같은 인간적인 전통들을 버리게 했고, 예배 순서도 성경적이면 단순하게 했다. 또한 행동하는 지식인이자 실천하는 신학자였던 칼빈은 하나님의 주권을 세상의 모든 영역 속으로 흘려보내는데 주력했다. 특히 구원받은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성화론을 많이 다루었다. 그는 오직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강조하다 보니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믿는 가톨릭보다 오히려 더 선행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은혜로 구원받는 신학의 오용이라고 했다. 과거 스위스는 가난하고, 늘 주변 강대국의 위협에 시달렸다. 16세기 제네바는 유럽에서 가장 악취가 심한 도시로 무너져가는 성벽과 쓰레기, 인분으로 뒤덮였고, 토사물과 상한 포도주 냄새로 가득 찬 곳이었다. 더군다나 제네바는 프랑스와 이태리의 교역 중심지였기 때문에 사방에서 오고 가는 사람들로 인해 제네바는 범죄자, 정치 난민, 용병, 간첩, 창녀, 빈민들로 가득했다.

 

 

이처럼 끔찍한 제네바의 변화가 칼빈에게서 시작되었다. 국제 예수전도단(YWAM)의 창시자 로렌 커닝햄은 "제네바의 변화는 칼빈이 사람들에게 성경을 체계적으로 가르쳤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칼빈은 말씀과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나라를 세워 유럽의 다른 도시에 모범을 보이고자 하는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제네바 시를 변혁해 나갔다. 또한 제네바는 유럽 전역에서 종교적, 정치적 핍박과 가난을 피해 온 개신교 난민들을 받아들였다. 사실 난민(refugee)이라는 말은 구약성경에 나온 피난처(refuge)라는 말에 근거하여 제네바 크리스천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칼빈은 제네바가 핍박받는 자들을 위한 피난처가 되길 원했다. 그런데 난민들을 받아들인 복지정책이 오히려 제네바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난민 중에는 예술가, 음악가, 기술자, 학자를 비롯한 당시 유럽에서 새로 생겨난 사업가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많아 이들의 열정과 기술이 제네바와 스위스 전체를 발전하는데 큰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칼빈은 모든 직업은 다 거룩한 것이며, 주일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만 예배가 아니고 평일에 자신의 직업에서 성실하게 일하면 이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된다고 가르쳤다. 칼빈은 1560년에 건강이 악화되었지만 선교하고 가르치고 저술하는 활동적인 일정을 계속하다가 1564년 5월 27일에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제네바를 위한 중보기도

1)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잠 16:9)은 언제나 선하시고 완전하신 분이심을 고백합니다. 스트라스부르크로 가고 있던 칼빈의 걸음을 16세기 유럽에서 가장 최악의 도시 제네바, 악취가 진동하고, 성벽은 무너지고 쓰레기와 인분, 토사물과 상한 포도주 냄새가 진동하는 제네바, 범죄자, 정치난민, 용병, 간첩, 창녀와 빈민들로 가득한 제네바에 멈추게 하시고, 소망 없는 제네바를 거룩한 하나님의 도성으로 변화시킨 하나님! 다시 한번 하나님을 떠나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린 제네바를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도시,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도시로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2)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도 중세 가톨릭 교회들처럼 커다란 예배당 건물을 짓고, 화려한 조명들을 설치하고, 본질이 아닌 것에 치중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혼합주의와 세상의 가치와 문화들을 따라가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경건한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잃어버린 교회와 목회자, 성도들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목회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에게 영적인 눈을 열어주셔서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모든 세상적인 것들을 버리고 돌아서게 하여 주옵소서.

 

3) 성도 개개인의 삶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음란과 사치와 방탕과, 술 취함과 같은 세상적인 죄악들을 회개하고 벗어버리고 모든 시대와 국가를 초월해 불변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을 회복하게 하여 주옵소서.

 

4) 값없이 거저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지 않게 하시고 세상과는 구별된 방법으로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성도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빌 1:27; 엡 5:3).

 

5) 우리 사역자들 가운데 아직까지 영혼이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오늘 이 시간 성령께서 그의 영혼 가운데 임하여 주셔서 자신이 죄인이며, 자신에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가 필요한 것을 깨닫고 주님을 영접하는 은혜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그가 진실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원자가 되시고, 나의 주님이십니다”라는 고백하게 하여 주옵소서(고전 12:3).

 

6) 세상과 함께 교회 안에 진리가 무너지고 흔들리는 이때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고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하고 가르치는 목회자들과 교사들을 일으켜 주옵소서!

 

7) 한국의 신학교들과 유럽의 신학교들, 더 나아가 모든 나라와 민족 가운데 세워진 신학교들마다 유일한 진리 되신 성경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전하는 교수들이 세워지게 하시고, 그들에게 이사야 선지자에게 주신 학자의 혀를 주셔서 앞으로 목회 현장과 선교현장에서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말씀의 세대들을 세우게 하여 주옵소서(사 50:4).

 

8) 진리를 위해서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이 땅에 말씀이 편만하길 위해 서라면 예레미야 선지자처럼, 그리고 수많은 종교개혁자들처럼 세상과 대적자들로부터 핍박과 조롱과 내어 쫓김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사명의 길을 갈 수 있는 주의 종들을 일으켜 주옵소서(렘 20:9).

 

9) 이번 사역을 함께하는 자들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기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불붙는 마음들을 부어주셔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세상과 세상 것들을 찾아 떠난 주의 백성들이 다시 주님 앞에 돌아오길 위해 기도하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우리의 작은 기도를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주께서 받으시고 축복하셔서 이 땅에 오병이어와 같은 기도의 응답과 능력이 나타나게 하시옵소서!

 

10) 하나님께서 칼빈을 통해 제네바가 하나님의 도시적 사명을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이 시대 모든 나라와 민족들이 하나님이 세운 비전을 알게 하시고, 그 비전을 이루는 나라와 민족 되게 하여 주옵소서. 더 나아가 모든 도시들이 하나님이 주신 도시의 사명을 회복하게 하여 주옵소서.

 

11) 하나님! 중세시대 제네바 시가 종교개혁의 통로로 사용되었던 것처럼 이제는 제네바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관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곳에서 많은 전도자들이 유럽과 전 세계를 향해 나가게 하시고, 전 세계와 열방으로부터 복음 전도자들과 중보기도자들이 제네바로 들어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제네바가 다시 한번 거룩한 하나님의 도시로 거듭나게 하여 주옵소서.

 

12) 칼빈은 종교개혁을 하면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도 예수를 주라 고백할 수없기 때문에 구원을 주시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 매우 강조했습니다(고전 12:3). 그는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열정적으로 위대한 헌신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도 실수할 수 있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눈이 열리지는 못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칼빈으로부터 프린스톤의 벤자민 워필드(Benjamin Warfield)까지 복음주의 개혁신학은 방언, 방언 통역, 신유, 기적 행함과 같은 은사들은 사도시대와 함께 중지되었다고 가르쳤습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탁월한 신학자일지라도 그의 이론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함을 주시옵소서. 또한 어떤 신학적인 교리도 완전하신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위에 두는 우를 범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13) 예수께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선교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성령의 역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에도 한국교회뿐 아니라 온 세계 많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성령의 내적인 충만함은 인정하지만 성령의 외적인 은사와 능력은 도외시하거나 인정하지 않았음을 중보 회개합니다. 이제라도 모든 교회들이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사모하고 회복하게 하여 주옵소서! 성령 하나님! 이 도시에 세워진 교회들 가운데 임하여주옵소서. 그리하여 교회가 부흥하고, 가정이 회복되고, 모든 도시들이 성령께서 통치하시는 거룩한 도시로 변화되게 하여 주옵소서.

 

14) 성령 하나님! 이 도시에 주의 은혜를 사모하며 부흥을 갈망하며 기도하는 세대들을 일으켜주옵소서. 이 도시의 죄악과 스위스의 죄악을 회개하며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우리에게 회개의 영을 부어주옵소서. 주여 우리의 심령 가운데 불을 주시고 이 도시에 성령의 불, 부흥의 불을 주옵소서”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들을 일으켜주옵소서. 그리하여 이곳에 임한 성령의 불, 부흥의 불이 스위스의 모든 도시들 가운데, 온 유럽에, 온 세계와 열방 가운데 흘러들어 가게 하여 주옵소서. 쓱 4:6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15) 스위스와 유럽의 모든 도시마다, 마을마다, 골목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교회들이 세워지게 하시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하는 교회들이 세워지게 하여 주옵소서!

 

16)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진정한 예배자들이 되게 하시고, 더 나아가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성도들이 입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뿐 아니라 가정, 직장과 사업장과 모든 관계와 삶의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확장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17) 하나님! 제네바의 시청과 모든 관공서와 학교와 상가와 모든 가정들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제네바가 거룩한 하나님의 도시로 변화되게 하여 주옵소서.

 

18) 하나님! 제네바가 난민들을 위한 도시적 사명을 회복하게 하여 주옵소서. 정치적이고 육체적인 난민뿐 아니라 이 시대 주님을 알지 못한 체 방황하는 영적인 난민들을 위해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피난처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도시에 들어온 난민들에게 사랑과 기도와 복음을 전할 사역자들을 일으켜 주시옵소서. 

 

 

모든 은혜에 감사드리며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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