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바울이 성공한 원칙 2가지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 앞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스토리를 통해 저를 포함하여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삶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1. 뒤에 것을 잊어버리라.
성공하는 사람들은 포기할 것을 과감하게 포기합니다. 버려야 할 것을 포기하지 않고 붙잡고 씨름하면 그것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놓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이 진리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성경의 빌립보서 3장 13절에 보니 “뒤에 것은 잊어버리고”라고 말합니다. 그는 과거를 돌아보고 과거에 매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과거 지향적인 사람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실패하는 사람의 특징은 미래를 향한 꿈과 기대보다는 과거의 것을 잊지 못하고 과거에 매여 사는 과거지향적인 사람입니다. 여러분! 성공적인 인생을 살려면 과거에 집중하고 과거에 매여 살지 마십시오. 미래를 바라보시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우리가 과거의 어떤 것들을 잊어버려야 할까요?
첫째, 우리 과거의 영광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과거에 인간적으로 보면 상당히 영광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당시 최고의 학교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서울대학교 혹은 하버드대학교 정도 나왔다고 보면 됩니다. 종교적으로 보면 바리새인이었으며, 신분적으로 보면 로마의 시민권자였습니다. 지성적으로,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최고의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빌 3:7에 보니 그런 영광스러운 것들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긴다”고 했으며, 8절에 보면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과거의 영광을 이제는 자신과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고 현재에 충실하며 미래를 향해서 달려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과거에 어떤 영광이 있었든지 현재 자신의 형편을 보고 열심히 일하고 미래를 변화시킬 생각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과거에 잘 살았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과거에 신앙이 좋아서 수많은 영적인 체험을 했고, 교회에서도 일등 신자로 인정 받았던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능력과 인격을 가지고 있었던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렇지 못하다면 과거의 영광에 빠져있으면 안 됩니다. 현실을 보시고, 현실에 충실하십시오. 그래서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일 것입니다.
둘째, 과거의 실패를 잊어버리라.
바울 사도 이라고해서 모든 일에 성공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도 실패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존경스러운 것은 그는 실패에 매이지 않고 실패를 거울삼아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사역의 길을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아덴, 그러니까 그리스 아테네에 갔을 때 였습니다. 그곳에는 수많은 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늘 새로운 철학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논리적으로 이기기 위해서 철학적 논쟁을 했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의지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말하기보다는 자신의 지식에 의지해서 논리를 전개했습니다. 아덴의 철학자들이 바울의 설교를 듣고 바울을 ‘말쟁이’라고 할 정도로 철학적이고 논리적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바울을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바울이 방문했던 도시 중에서 아덴만큼 구원 받는 사람이 적었던 곳이 없었습니다. 다른 곳에서의 사역에 비교하면 아덴의 사역은 실패한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아덴의 실패로 낙심하고 절망하고 자신의 능력의 한계가 그만큼이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실패를 경험으로 십자가에 구원의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서 사역을 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바울은 과거의 실패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혹시 과거에 실패로 낙심하고, 절망하고, 자신의 한계가 그것 이라고 생각하고 계신다면 생각을 바꾸십시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생활은 내게 능력 주시는 분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약한 나를 강하게, 미련한 날 지혜롭게, 병든 날 새롭게, 가난한 날 부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을 의지하셔서 과거의 실패에 매인 줄을 끊어버리기를 바랍니다.
셋째, 과거의 죄악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과거에 많은 죄악을 범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그는 과거에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사람입니다. 스데반이 돌아 맞아 죽을 때에도 사람들을 선동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과거의 죄악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히려 자기가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린 보배로운 피의 능력으로 과거의 죄를 용서 받고 새로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우리도 믿기 전에는 사도바울처럼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백성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요,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과거에 어떤 죄악을 저질렀던지 하나님 앞에서 자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로마서 8장 1절과 2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넷째, 과거의 상처를 잊어버리라.
마음에 상처가 없는 사람은 무슨 설교를 해도 은혜가 됩니다. 예배시간이 기쁘고 행복합니다. 마치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드립니다. 그런데 상처가 있는 사람은 은혜 받기가 어렵습니다. 상처는 사람에게 받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 받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 받습니다. 그래서 가족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받는 것이고, 그 다음은 자주 만나는 사람에게 상처를 많이 받는 것입니다. 상처는 우리의 마음에 쓴뿌리를 만듭니다. 그 쓴뿌리는 쓴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상처가 처리 되지 않으면 결국 계속해서 생활에 쓴 열매가 열리기 때문에 인생이 쓴 열매로 가득하고 고달픈 인생을 살게 됩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치료 받기 위해서 상처 준 사람을 “안 보면 그만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마음의 상처가 치료되는 방법은 상대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예레미야 28장 13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나무 멍에들을 꺾었으나 그 대신 쇠 멍에들을 만들었느니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통해서 내가 변화 되려고 해야지 피하게 되면 더 센 사람을 붙이셔서 나를 변화시키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도 많은 상처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사역을 하면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3절-27절을 보면 기가막힌 고백을 합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우리 중에 바울처럼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감히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 상처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그 상처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믿음의 생활입니다. 상처를 받을 때마다 하나님의 일을 포기한다면 사도 바울 같은 경우는 어떻게 그렇게 큰 일을 해낼 수 있었겠습니까?
여러분도 상처가 있을 것입니다. 평생 상처 부둥켜안고 사실 겁니까? 상처 받을까 무서워 사람 만나는 것도 안하고, 상처 받을 것이 두려워 새로운 일에 도전도 안하고, 상처 받을 것이 두려워 하나님의 일도 안 할 겁니까?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담대하세요. 그리고 사람도 만나시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시고, 하나님의 이에 헌신하십시오. 웅크리지 마세요. 피하지마세요. 치료의 하나님을 붙잡고,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시고, 그를 사랑해 버리세요. 그 길이 상처에서 해방되는 길입니다. 우리는 사도바울처럼 뒤에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것을 잡으러 달려가기를 축원합니다.
2. 앞에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야 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앞의 것은 무엇이었을 까요?
첫째, 앞에 것은 자신의 푯대를 말합니다.
빌립보서 3장 14절에 보니 사도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푯대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사도 바울의 부르심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고 로마를 통해서 온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울의 사명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나의 인생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100m 달리기 시합을 한다고 해봅시다. 어떤 사람이 100m를 8초대에 끊었어도 만약 그 라인을 벗어나서 엉뚱한 곳으로 달렸다면 그 사람의 기록은 인정이 되지 않습니다. 그는 실격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졌고,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소리를 들어도,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기신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해서 성공했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의 인생이 성공적이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자신의 부르심, 자신의 사명, 자신의 비전을 알고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그 일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이르면서도 그는 자신의 부르심, 자신의 사명, 자신의 비전을 잃지 않았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단두대에서 목이 잘려서 머리가 당에 덜어진 상태에서도 예수를 믿으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진정한 인생의 성공은 자신의 부르심, 자신의 사명, 자신의 비전을 알고 그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세상에서도 인정받고, 하나님께도 인정받는 여러분들이 되실거라 믿습니다.
둘째, 앞에 것은 하늘의 상을 말합니다.
빌립보서 3장 14절에서 바울은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면 하늘에 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상을 목표로 달려가야 합니다. 진정한 신앙생활은 현세의 복보다 내세의 영광, 내세의 상급을 사모하며 달려가는 것입니다.
교회 나온다고 다 같은 신자가 아닙니다. 위에 것을 생각하고 위에 것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과 땅에 것을 바라보고 땅에 것을 위하여 사는 사람은 영적인 차원에서 보면 완전히 다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이 땅에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행한 대로 상이 있습니다. 그곳을 바라보며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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